나의 친구들
죽마고우 천을모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평생을 어떻게 사느냐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인생을 살다 보면 많은 사람들과 조우(遭遇)하게 된다.
더구나 학창시절에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자기 인생 구도가 바뀌기도 하고 상호간에 많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다행히 학창 시절에 절차탁마(切磋琢磨-논어의 ‘학이편(學而篇)’에서 유래한 말로 ‘학문이나 덕행 등을 배우고 닦음’을 이르는 말) 할 수 있는 지기(知己)를 만날 수 있다면 그 인생은 행복함과 동시에 축복 받은 인생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나의 현재까지 살아온 인생은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 된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 올라와 외톨이로 지낼 때 따뜻한 사랑과 은혜를 베푼 친구들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나는 키가 아주 작은 편에 속하지만 내가 중학교 다닐 때의 키가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의 키와 거의 비슷했다.
그런데도 간은 커서 키 큰 아이들이 나를 작다고 무시하거나 깔보면 그 집 앞까지 찾아가서 고함지르며 한판 붙자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곤 했다. 왜냐하면 내 곁엔 키도 크고 가정환경이 좋은 ‘C’군이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나를 보호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친구의 아버지는 제법 높은 관직에 있었고 어머니도 그 당시엔 부산시에서 존경 받는 한국부인회 부산 경남 지부의 책임자로 많은 봉사 활동을 하고 계셨다. 어린 시골 촌놈의 눈엔 그 집 식구가 모두 훌륭했고 그런 가족을 가진 그 친구가 한 없이 부럽기도 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도 그 친구의 집에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떠돌아다니며 이 집 저 집에서 얻어먹고 지냄)하는 생활을 제법 오랫동안 했다. 그때는 모두 어렵게 살던 시절이라 별로 흉 될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나의 이런 생활은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는 좀 더 다양해 졌다. ‘C’군 뿐만 아니라 ‘B’군, ‘S’군, ‘L’군의 집에까지 그 영역이 더 넓어졌다.
그때 나는 한참 ‘이상향’(理想鄕)에 빠져 ‘심훈’의 ‘상록수’와 일본의 사상가인 ‘무샤고오지 샤네아쓰’의 “인생독본”을 즐겨 읽고 그 내용을 실천에 옮기려고 ‘청석회(靑石會)’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우리에겐 청석은 푸른 돌을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깨어지지 않는 단단한 우정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회원들은 말할 것 도 없이 나를 위시해서 C군, B군, S군, L군 그리고 나와 같이 가난했던 거제도 출신의 K군 이었다. 지금 말로 하자면 ‘동아리’ 모임이었다. 우리는 점심시간이 되면 매일 학교 뒷산에 있는 여우 굴 같은 작은 굴 안에서 모여서 장래의 꿈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때 우린 어린 나이에 어울릴 것 같지도 않은 책들도 읽고 토론도 하곤 했다.
그 당시 내가 가장 즐겨 읽고 그 사상에 심취했던 사람은 일본의 사상가 ‘무샤고오지 샤네아쓰’ 였다.
“나아가자 나아가.
두려울 것은 아무것 도 없다
가다가 지치면 풀밭에 번듯이 누워
푸른 하늘이라도 쳐다보는 게 좋다.
그리하여 피로가 풀리면 일어나
다시 나아가자 나아가……”
나는 그에게서 배운 이 말을 무수히 외쳐대며 시간을 보내었다. 그러다 대학 진학 시기가 되었을 때 우린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향(Utopia)을 건설하기 위해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기로 했다. C군은 법과로, B군은 토목과로, S군은 축산과로, L군은 의과로, 거제도 출신의 K군은 정외과로, 그리고 나는 정신적 지주가 필요하다 해서 철학과로 진학하기로 결정했었다.
지금 그들은 젊었을 때 나처럼 약간 외도를 한 친구가 있는가 하면 그때 정한 방향대로 묵묵히 그 길을 가고 있다. 법대에 진학한 C군은 현재 한국의 모 지방 의회에서 지방의회 ‘의장’으로, B군은 모 건설회사의 중역으로, S군은 일선 사업에서 은퇴하여 경기도에서 흙냄새 맡으며 그의 꿈을 실천하고 있으며, L군은 이름있는 어느 의과 대학 교수로, K군은 모 대학 부속 고등학교에서 국민윤리를 강의하며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내가 한국에 가면 우린 지금도 산을 타며 그때의 추억을 회상 하곤 한다.
나는 못다 한 인생 공부를 하며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강조한 “어중간한 철학은 현실을 도피 하지만 완전한 철학은 현실을 인도한다”는 말을 쫓아 생활 철학을 즐기며 미완성 존재인 wege sein(독일말로 ‘베게 자인’이라고 발음함)에서 하나님의 영성을 닮아가는 삶을 추구하고자 한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의 교우편(交友篇)에서 ‘공자(孔子)’가 언급한 친구 사귀는 법을 오늘도 되새겨본다…
酒食兄弟(주식형제)는 千個有(천개유)로되 急難之朋(급난지붕)은 一個無(일개무)니라.
서로 술이나 음식을 함께할 때는 형이니 동생이니 하는 친구가 많으나, 급하고 어려운 일을 당하였을 때 도와줄 친구는 하나도 없느니라.
不結子花(불결자화)는 休要種(휴요종)이요 無義之朋(무의지붕)은 不可交(불가교)니라.
열매를 맺지 않는 꽃은 심지 말고 의리 없는 친구는 사귀지 말지니라.
君子之交(군자지교)는 淡如水(담여수)하고 小人之交(소인지교)는 甘若醴(감약례)니라.
군자의 사귐은 맑기가 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달콤하기가 단술 같으니라.
- 글쓴이 주석 -
이글은 2005년 7월 15일자 미국 아리조나주의 한국어판 주간지 “코리언 투데이”에 실렸던 컬럼을 수정 없이 올리는 글입니다. 필자가 지칭한 ‘K’군은 ‘청석’ 김성일 씨 입니다. 나의 꿈이 이루어져 이제 미국 땅을 밟을 친구를 생각하며 이글을 올려 봅니다.
미국 애리조나 SEDONA 국립공원에서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 오로밸리 카운티, 죽마고우 엘모천의 부부와 자택사진(2006년 가을)
부산특별시 의회 의장실에서 청석회 친구들 30년만의 해후
미국에서 온 친구들과 부산시 남포동 뒷골목에서 맥주 한 잔
미국에 이민 온 한국 친구 가족과 친목 만찬(중앙에 안경 쓴 이가 Elmo Chun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