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리조나주 투산에서
내 고등학교 동기생 중에 학창 시절 나와 가장 대화를 많이 나눈 친구 K가 있다. 지금도 나는 그와의 대화를 무척 즐기는 편이고 앞으로도 그는 지적, 영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나의 몇 안 되는 친구 중의 한 명으로 남을 것이다.
그는 거제도 출생으로 숫한 역경을 이긴 인생의 살아있는 용사로서 많은 동료와 친구들로 부터 존경 받는 사람이 되었다. 또 후진양성을 위한 교육자로서의 그의 삶은 참으로 진정한 사도(師道)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그의 인생 경력은 참으로 다양하고 극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마치 수 많은 전투에서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로 많은 훈장을 가진 전사와 같다. 그는 한국의 경상남도 거제군 일운면 지세포리에서 농토라고는 한쪽도 가져보지 못한 가난한 어부의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그는 그의 나이 다섯 살에 사랑하는 어머니의 운명을 눈물로 지켜 보았다.
그의 어머니는 민족의 명절인 음력 설 이틑날 차디찬 방에서 숨져갔다.
그때 세살된 그의 막내 동생은 동내에서 얻어온 떡을 손에 쥔 채 영문도 모르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그의 운명적 시련은 거기서 그친게 아니라 그가 17세 되던 해에 또 다른 현실로 그에게 닥쳐왔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K의 아버지는 그의 어머니의 유언대로 재혼하지 않고 자식들을 돌보며 홀로 사시다가 영양실조로 돌아 가셨다.
아버지를 딴 세상으로 보낸 그는 어둠과 암담한 시련 속에 버려진 마치 길 잃은 조각배와 같은 운명을 맞아 힘 없고 가련한 고아처럼 자랐다.
며칠 전 나는 한국에 있는 지인과 함께 우연히 거제도에 들릴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포로 수용소가 있었던 곳에도 가 보았다. 그 곳을 돌아보는 나의 가슴은 비감(悲感)으로 가득했다. 동족 상존의 아픈 상처와 함께 나의 친구 K와 그의 막내 동생의 눈물에 젖은 아련한 추억은 나의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그 시절은 별로 예외 없이 K의 형제만 그런 게 아니고 모두다 그렇게 어렵게 지냈다고 자위를 하면서도 그 생각을 영영 떨쳐 버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이 달라진 현실 앞에서 나는 어려웠던 그와 나의 과거를 지워버리고 다시 오늘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아픔을 이길 줄 아는 용기가 있었다.
생존의 방식을 이해하는지혜가 있었다. 또 그는 자기를 연민(憐愍)하기보다는 자기를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늘 혼자서도 우뚝 설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와 내가 만날 때 마다 자주 읊어 대는 그의 인생 이력서,
“가난뱅이로 태어나서 군대 생활 8년, 10년만의 대학 졸업장, 기업체 근무 5년, 입시학원의 국민윤리 강사 5년, 사립고교에서도 오직 국민윤리를 고집스럽게 가르치며 평교사 16년 근무로 이제 62세의 노인이 되어 정년 퇴임을 맞이하게 되었다.
1968년 육군 장교 생활로부터 지금까지 직장 생활 40년을 이제 마감한다.”
그 자신의 운명을 비관한 그의 동생은 스스로 자기 생명을 포기하고 이 세상을 먼저 떠났지만 그는 지금 그의 파란 만장한 인생을 통해 삶의 승리를 즐길 수 있는 위치에 와 있다.
정년을 앞두고 그는 그의 인생의 뒤안길을 회상하는 여유도 가지고 있고, 그와 그의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뜨거운 정열로 오늘날 무너져가는 조국의 도덕성을 온 몸으로 부딪쳐 가며 지켜내려는 그의 의지가 엿 보인다.
그는 그의 정년 퇴임을 앞두고 그가 평소 실천해왔던 나라 사랑 운동과 그의 인생살이를
그간 학계, 잡지, 논문집 등을 통해 발표했던 그의 ‘논설 수상’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최근에 세상에 내어 놓았다. 이름하여 “한국의 위기”( 펴낸곳-뿌리).
그의 논술 집에서는 ‘교육의 목표는 인간 교육이 선행 되어야 한다’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위한 청소년의 교육은 물론 민주 발전과 교육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 하기 위한 방법으로 충효 사상의 재정립의 필요성과 상생의 논리로 재 무장 해야 할 것을 강조 하고 있다.
이외에도 남북한 사회체제의 윤리적 비교 및 통일에 관한
한반도 중립화 논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는 이 책 속의 수상 편에서 ‘이 것이 인생이다’ 라고 외치고 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기뻐하라! 그리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
흘러 간 슬픈 이야기는 모두 잊어버리자.
크게 잘한 것도 없고, 크게 못한 것도 없단다.
인생은 그런 것, 흘러가는 것이란다.
(중략)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이제는 어두운 과거를 묻어버리고 찬란한 태양을 바라보자.
세상은 봄비가 그리운가 봐
나무와 꽃들이 새싹이 나고 꽃잎이 눈을 뜬다.
식수가 모자라서 사람들이 봄비가 그리운가 봐.
(중략)
오늘은 일요일, 엄마 손 잡고 도봉산에 가야지.
교회도 가고, TV도 보고, 책도 읽고, 낮잠도 자야지.
산에 가서 순박한 나무와 바위와 대화하자.
자연은 인간들처럼 거짓말하지 않는다.
(중략)
손녀의 재롱이 귀엽다….
암흑의 시대에 태어나 동서 냉전의 희생물인 한반도에서
격동의 시절을 보내고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아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가……
강대국의 미사일에 죽어가는 인간 들아
약소 민족끼리라도 서로 싸우지 말자.
피로 얼룩진 지구촌에 테러가 아닌 사랑의 꽃씨를 뿌려보자
돈 많고 출세한 자들이여 정의와 양심이 살아 숨쉬는 화단을 가꾸어보자.
나는 K의 이 글을 통하여 그와 내가 20년 동안 다른 환경 속에서 각기 다른
인생의 세월을 보냈던 단절의 시간을 다시 찾으며, 그는 정말 멋지게 살았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라 는 믿음으로, 또 그에게서 배워야 할 시간이
나의 여생을 더욱 값지게 만들 것이라는 확신이 선다.
그래서 나는 참으로 행복하다…
그의 저서 논설수상집<한국의 위기> 제1부 (이것이 인생이다)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수필집<슬픔은 강물처럼>을 출판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여생에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글쓴이의 주석-
이글은 2005년 11월 5일자 미국 아리조나주의 한국어판 주간지 "코리언 투데이" 에 실렸던 컬럼을 수정 없이 올리는 글입니다.
필자가 지칭한 'K'군은 '청석' 김성일 씨 입니다.
나의 꿈이 이루어져 이제 미국 땅을 밟을 친구를 생각하며 이글을 올려 봅니다.물질적으로는 우린 가난했지만 그때도 마음만은 부자였습니다. 우린 참으로 조숙했고 꿈에 불타 고등학교 1학년때 일본의 사상가 '무사고지 사네아쓰'를 흠모하며 '청석회'를 발족시켰고 대학 진학 할때도 미래의 꿈을 실현하기위해 역활 분담을 결의하며 여러분야로 전공 과목을 정해서 진학 했습니다.
이모임의 산실에 청석과 필자가 참여하여 '유토피아'로의 꿈을 그렸습니다.
15세의 어린 나이에 우린 벌써 키엘케골과 싸르트르의 무와 허의 영역을 논했던 참으로 겁없는 소년 들이었습니다.
그때로부터 47년이 지난 우리의 모습을 보며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저가 한국에 가면 청석회 회원들이 서울과 부산에서 모임을 갖습니다.
우리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제일 오래된 클럽이고 많은 동기들에게도 아직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투산 오로벨리 카운티 친구 자택
애리조나 투산 공항에 마중 나온 죽마고우 천**(좌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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