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둥이 교직 생활
1989년 가을, 어느 날 갑자기 대학원 동창생이 찾아와 나를 고등학교 국민윤리 교사로 추천하였고 서울○○대학교 재단 이사장께서 나에게 현장 교육의 기회를 마련하여 주셨다.
이 학교는 전교조사태로 3명의 교사가 해직되었고 국민윤리 교사가 결원이었다.
대학 입시를 4개월 남짓 남겨놓고 3학년 학생들은 2개월째 국민윤리 수업을 받지 못했으므로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쳐 대학입시학원에서 오랫동안 국민윤리과목을 강의하여 온 나를 선택한 모양이다.
교장과 교감은 나를 학생들에게 소개시켜 주지도 않고 무조건 시간표대로 들어가서 수업을 하라고 하였다.
2학년 교실에 들어가려고 문을 여니 출입문이 잠겨 있었다. 책상으로 바리게이트를 치고 못들어 오게 해 두었다. 3학년들은 당면한 입시 때문에 수업을 갈구하고 있었고 열강하였더니 기립 박수를 보내주었다. 박수 소리에 옆방 교실에서 수업을 할 수 없으며 내가 인기 작전으로 학생들을 선동하여 의도적으로 옆방 수업을 방해하였다고 나를 오해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한참 노-크를 하니 반장이 문을 열어주었다. 학생들은 책가방을 모두 싸 놓고 책상 위에는 책이 없었다. 집단 수업 거부였다. 나의 교육 철학이 무엇인지, 왜 왔는지 반말 비슷하게 질문하면서 증오의 눈초리로 째려보았다. 교육의 현장은 살벌하였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꼴이 되었고 교장, 교감이 왜 나타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학교는 왜 전교조가 강성인지 몇 년 후에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부임하자마자 정규 수업 주당 22시간에다가 새벽 보충 수업 주당 10시간을 합쳐 주당 32시간을 강의하다보니 나의 목구멍은 빨갛게 부어오르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강의했다. 국민윤리 과목이 대학 입시에 필수 과목이고 25점이나 배정되어 있지 않았다면 과연 얼마만큼 관심이 있었을까 의문시 되는 것이 오늘의 교육 현장이다.
교실에 들어가니 어떤 학생은 상당히 의식화되어 있었고 반정부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 3학년 학생들은 당면한 대학입시 학력고사에 관심이 많았으나 대학 진학을 포기한 학생은 아예 교과서도 노-트도 갖고 있지 않았다.
해외에서 귀국한 외교관 자녀나 해외 상사 주재원 자녀들은 대학시험에서 특별 전형 대상이므로 국・영・수 3개 과목만 치루므로 나머지 일체의 과목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공부하지도 않고 수업을 받지도 않고 있었다.
3학년이 되면 그들은 학교에 늦게 등교하고 조기 귀가하기 때문에 학교 현장에서 새로운 귀족 특권 계급이었다. 심지어 직업반을 선택한 학생들은 가방도 책도 없이 학교에 등교하는 사례도 목격할 수 있었다.
2학년 학생 가운데는 R.O.K보다 D.P.R.K를 합법 정부라고 당당히 답변하는 학생도 있었고, 국민윤리 시간에는 대학입시에 배점이 많은 영어나 수학 문제집을 공부하거나 학원 숙제를 하고 있었다.
노-트 검사를 해보니 궁민윤리(宮民律理)라고 필기되어 있었고 ,그 이유를 알아보니 담당교사로부터 그렇게 교육받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중간고사 O.M.R 카드에까지 궁민윤리(宮民律理)라고 표기하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로 하여금 반정부 투사로 의식화시켜 놓은 것이었다. 교무실의 환경을 살펴보니 담배연기가 자욱하여 여교사와 담배를 피우지 않는 교사들이 곤혹스러워 하고 있었다.
전화기는 한 대밖에 없었고 교사들의 휴게실은 없었으며 손 씻는 세면대는 한 개 뿐이며 때묻은 걸레가 한 개 걸려 있었다.
교사들의 불평은 봉급이 적다는 것과 한 시간에 7천원씩 지급되는 새벽 보충 수업 때문에 새벽잠을 설치면서 아침 식사도 못하고 학교에 출근하여 어둠침침한 7평 남짓한 좁은 교사 식당에서 4백원짜리 국수를 먹고 있는 현실 등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학교는 사립학교이므로 인사이동이 없기 때문에 학교장의 권위주의와 담임 배정, 직무 분장 등에 비합리적인 인사관리 그리고 주임교사들의 편파주의, 정의주의(情誼主義) 업무처리에 대한 젊은 교사들의 불만이 많았다. 또한 이 학교는 ○○대학 부속학교이므로 타 대학 출신 교사들은 소외당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학교의 경영관리, 교직원의 인사관리, 보직관리가 무원칙하고 불공정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연로(年老)하신 고참교사들도 역시 소외되고 존경받지 못하며 젊은 교사들이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협동, 화목, 단결보다 끼리끼리 파벌이 많았다. 주임(부장) 교사들은 교육문제보다 교감, 교장 승진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워 몰두하고 있었다.
학교의 주변 환경을 살펴보면 인접에 대학이 있어 수시로 데모가 발생하기 때문에 인접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배운다는 것이 최루탄 발사, 돌맹이・화염병 투척, 경찰과 대학생들의 쇠파이프 공방전 등이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 입구에는 시장이 있고 쓰레기 하치장이 자리잡고 있으며 온갖 술집, 오락실, 만화가게, 잡상인들이 정문 앞에 진을 치고 있다. 학교 건물은 낡아서 화장실이 불결하며 암모니아 냄새가 지독하다.
대강당이 없어서 우천시에는 교실에서 월요 조회를 실시한다.
어떤 교사들은 휴대용 앰프, 마이크로 강의하고 있다. 법인 사무처에서 부속학교 시설에 투자가 인색하다고 교사들은 불평하고 있었다.
신학기가 되면 8학군에서 배정되어 온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다시 8학군으로 재배정 받아 년간 30~40명씩 떠나버린다.
남은 학생들과 이 학교를 지키고 있는 교사들의 사기는 저하되고 있으며 극성스러운 학부모들의 교권 침해와 학교 운영에 대한 간섭은 다반사였다. 교육위원회가 있다고 하지만 과연 교육의 자주권을 수호하고 지원하는 곳인지 학교를 간섭하는 지배자인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교사들의 언어와 행동을 보면, 욕설이 많고 교육적인 내용보다 정치적인 시사 문제나 증권 투기, 부동산 투기 등 재산 증식에 관한 이야기가 많으며 특히 새로 나온 승용차를 구입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학생 상담실은 없고 지하실에 사법기관 냄새가 나는 어둠침침한 교도과가 있고 주로 처벌 대상 학생에 대한 반성문을 접수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학생과는 주로 처벌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교사는 담배를 피면서 흡연학생은 징계처분을 받고 있다.
학부모들은 학교의 애로 사항과 교사들의 고충을 이해하기보다 공격적이고 간섭적이고 자기 자녀만을 위주로 학교의 장학 업무에까지 침범하려 한다. 학생들의 덩치에 비해 책상과 의자는 너무 작고 초라했다.
교육 외적 환경은 교육 내적 환경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참다운 인간성 함양보다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이 언제 시정될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인내와 성실로 근무한지 벌써 17년이 흘러갔다. 갈등과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17년전(1989년)에 비하면 지금은 많은 것이 변했다. 학교도 8학군으로 이사갔다. 새 건물에 좋은 환경으로 변모했다.
교사 1인당 PC 1대, 개인 전화기 1대, 교실마다 대형 컴퓨터가 설치되고 학생들의 책・걸상도 신형으로 바뀌었다. 식사는 대형 식당에서 매일 LG뷔페로 식사하며 사무실엔 프린트기, 복사기, 온수기, 에어콘, 보일러 시설이 완비되었다. 정부, 사학재단, 학부모, 학교가 노력한 결과 비약적으로 개선되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은 인성 교육보다 국・영・수 위주의 입시교육이다.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판치고 교육자들의 권위가 무너지고 사교육이 판치고 있다. 세계화시대에 필요한 경쟁력은 오히려 약화되고 상대평가 대신 절대평가제도는 시험문제 쉽게 내기, 성적 부풀리기 등의 부작용을 가져왔다. 창의력 향상 이라는 7차 교육과정은 학생 선택과목이라는 명목으로 시험과목 축소와 국민 보통교육인 중・고등학교의 편파교육의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며 대학 시험에 소외된 과목은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인성교육을 강조하면서 정서 함양 교과인 음악, 미술교과 시수의 축소, 윤리・도덕 교과의 선택과목으로의 전락을 가져왔다. 국사와 윤리가 어떻게 선택 과목이란 말인가? 민족의 주체성을 상실케 하고 윤리・도덕이 타락함으로서 짐승만도 못한 인간으로 전락되고 있다.
인문・사회 계열 지망생은 과학탐구과목을 배우지 않으며, 자연계열 지망학생은 사회탐구과목을 배우지 않으므로 고교 교육은 파탄으로 가고 있으며 자라나는 학생들의 인격(지・덕・체)형성에 구멍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교육이 출세의 수단으로 전락되고 정치가 치부의 대상이 된다면 우리는 또 새로운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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